다양성과 포괄성

타인종 목회에서의 갈등과 극복

 
미국 농담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목사가 첫 교회에 파송을 받아가서 첫 설교를 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는 교회 문간에서 교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심술궂게 생긴 영감님이 목사에게 말했다: "You read your sermon. You read your sermon poorly. You read what was not worth reading in the first place" (설교를 원고보고 읽으면 어떡해. 그리고 읽는 것도 시원치 않았고, 내용도 형편없었어)라고 신임목사의 기를 콱 죽여 놓았다.

젊은 목사는 첫 설교에 대한 혹평을 듣고, 기가 죽어 있었는데, 뒤이어 나온 친절하게 생긴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목사에게 말을 했다. "Don't listen to him. He's just repeating what everybody else is saying."(아, 그 영감님 말 듣지 마세요. 그 영감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저 옮기는 것뿐이니까)했다는 것이다.

미국 목사가 미국인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해도, 교인들로부터 혹평과 비판을 받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한국인 1세 목사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있는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할 때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갈등과 문제를 겪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타고난 성품이 온유하여 인간관계에 별다른 마찰 없이 미국목회에 잘 적응하여 성공적인 미국인 목회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언어장벽과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인 목회를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보았다.

얼마 전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타주에서 미국인 목회를 나갔다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교인들과의 갈등으로 목회를 그만 두게 된 분이었는데, 위스칸신에서 미국인 교회의 목회를 하도록 소개를 좀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분이 어떻게 해서 미국인 목회를 도중하차하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으며, 지난 10년간 내가 위스칸신에서 미국인 목회를 하며 범한 실수들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저질렀던 실수담이 미국인 목회를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내가 겪은 타인종 목회에서의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갈등의 원인은 나의 hyper-vigilance(겁먹음)이었다. 나는 불행하게도 예민한 신경을 타고나서,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다. 신경이 좀 무디고, 배짱이 좋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안 되는 문제도, 내게는 큰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교인들에게 여유 있는 미소와 당당한 자신감을 보이면, 미국교인들도 덩달아 한국목사님을 존경하기가 쉬울 텐데, 나는 지레 겁을 집어먹고, 교인들이 나를 싫어 할까봐 눈치를 보고 잔뜩 긴장되어 있으니, 교인들도 나를 대하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비굴할 정도로 교인들을 기쁘게 하고자 굽실굽실 거리니, 점잖은 교인들 마저 역겹게 느꼈을 것이고, 심리가 불안정한 교인들은 아예 대 놓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 번은 친교시간에 교인들에게 모두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자 할 때, 대부분이 웃는 낯으로 악수에 응해 주었지만, 한 심술궂은 할머니는 내가 손을 내밀자, 등을 돌리며, 악수를 거부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화가 나서 속을 부글부글 끓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목사님의 사모님은 미국인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미국식으로 인사한다고 생각하며, 교인 할머니들에게 포옹을 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은 잘 응해 주었으나, 한 할머니는, "I don't need your hug(너 포옹 필요 없어)"하며 사모님을 확 밀어 내었다고 한다.

사모님은 무안하고 화가 나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큰 마음고생을 했다 한다. 사모님은 좋은 뜻으로 포옹을 한다고 하였지만,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사람들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personal space에 남이 들어오는 것을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무리하게 미국인 교인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법이다.

두번째는, 이런 문제가 났을 때, "미국교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단정 짓게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물론 동양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을 갖고 있는 못된 미국인 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미국인 교인들은 선량한 사람이 많으며, 한국인 목사가 언어의 장벽과 문화차이에서 오는 오해를 확대하여 "인종차별"이라고 성급하게 몰아가면, 이는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치닫는다.

못된 교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지라도, 이를 섣불리 발설하면 안된다. 교인을 racist라 부르면, 그것으로 교인과 목사와의 관계는 끝나게 되므로,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셋째는,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 갈등해결의 열쇠라고 본다. 인간관계 갈등의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미국인 교회를 섬기는 한국목사로서,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과, 미국문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인정하고, 늘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지, "나는 문제없고,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교인들이 문제다"하며 고집을 피우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내 경우를 돌이켜 보면, 내 영어실력이 부족하고, 설교를 은혜롭게 못하니, 지레 겁을 집어먹고, 교인들이 불평을 안할까 하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가 교인들이 나의 발전을 위해 잘못을 지적해 주면, 인종차별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씩씩 댈 때, 문제가 필요이상으로 깊어져 간 경험이 있다. 과민반응하지 말고, 침착하고 안정감있게 사태파악을 하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대처하면 훨씬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네째는,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주변의 동료목회자들의 조언을 경청해 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자존심이 상하여 남에게 안 알리고 혼자서 해결하려 들다가, 문제해결의 시기를 놓치고, 심각한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옛말에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 고 하듯이, 자기 문제를 믿을만한 사람에게 솔직히 털어 놓고 겸손하게 얘기하는 과정에서 금쪽 같이 귀한 깨달음과 지혜를 얻게 되기도 한다.

다섯째는, 교인들과의 갈등이 심해지면, 감리사에게 상담을 하고, 자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책없이 감리사에게 미주알 고주알 쏟아 놓다가, 감리사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으므로 지혜롭게 말해야겠으나, 우리 일선 목회자의 거취문제는 감리사가 실권을 쥐고 있으므로, 감리사와 상담을 해야지, 감리사를 월권하여, 감독에게 직접 편지나 전화를 하다가는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 목사가 미국인 목회를 할 때,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긴 해도, 결국 목회는 인간관계에 귀결된다 하겠다. 인간관계의 비결은 "모든 것은 다 제 할 탓에 달려 있다(If it is to be, it is up to me)"는 말에 있다고 본다. 외부 환경의 도전과 시련이 심해도, 남을 탓하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미국인 교회에서 한국목사의 꽃이 피어나리라 믿는다.

글쓴이: 조정래 목사, Zion/Salem UMC WI
올린 날: 2008년 7월 2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