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살구꽃

북한교회 이해를 위하여(5)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이 14살 때 지은 시에 홍난파 선생이 1926년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한 폭의 수채화로 담아낸 동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민족의 산과 들녘에 봄의 기운이 붉게 솟아난다. 얼어붙은 고향 마을은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로 푸르름이 출렁이고, '고향의 봄'은 이제 남북한이 함께 즐겨 부르는 민족 동요가 되었다. 분단의 아픔을 화해, 용서, 그리고 사랑으로 치유하고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남북이 함께 부를 때, '그 속에서 놀던 때'로 돌아가리라는 확신의 그리움은 뼈 속까지 사무친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폐허가 된 이스라엘의 새봄을 눈물로 노래하였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은 경쾌하고 활달하지만 예레미야의 '봄'에는 비장함과 애절함이 녹아있다. 그가 본 살구나무 가지(렘1:11)에는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시련이 달려있었다. 살구나무의 히브리 원어의 뜻은 '깨어있다'는 말이다. 살구나무는 예루살렘 부근에서는 1월말 잎이 나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운다. 모든 다른 나무들이 겨울 동안 잠들어 있을 때 살구나무는 제일 먼저 순백에 가까운 핑크빛 꽃으로 봄의 향기를 내뿜는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이 깨어있어서 때가 되면 실현되고야 만다는 진리를 살구나무로 비유한 것이다. 해방 이전 북한 교회는 기독교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 역사를 되돌아보면 얼어붙어 있는 북녘 땅에 살구나무 씨앗이 깨어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 확신의 첫째 배경으로 북한은 외국 선교사들이 아닌 조선인(북한사람)에 의해 조선인(북한사람)에게 복음이 처음으로 전해진 세계 선교역사에 유례가 드문 땅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 1884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발을 내딛기 전, 북한 지역에는 이미 성경의 일부가 번역되어 보급되기도 했다. 서상륜, 백홍준, 이성하 등의 젊은 청년들은 중국 국경지대의 경계망을 뚫고 낱권 성경을 의주, 평양, 황해도 지역에 보급하였다. 1884년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소래의 초가집 하나를 빌어, 소래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가 조선의 첫 교회이다. 소래교회는 마을의 58세대 중에서 50세대가 교회에 나올 정도로 열심이 있던 교회다.

둘째, 하디 선교사의 회개와 간증을 통해 불붙은 1903년의 원산 회개운동은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이어졌다. 북한 지역 곳곳에 복음이 왕성하여졌고, 이후 5년간 평양 지역의 기독교인구는 20배정도 성장하였으며, 전국에 걸쳐서는 약 3배의 성장을 기록하였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평양과 선천은 기독교가 번창하였고, 특히 선천은 인구의 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 주일날에는 예배 드리러 가는 교인들 때문에 장이 서지 않았다고 하며, 의주나 용천군 지역에는 총 3000명의 신자를 가진 20여 교회가 자라고 있었다. 남한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북한은 남쪽보다 더 뜨거웠던 믿음 생활의 본을 보여주었다.

셋째, 한국 교회의 자랑 새벽기도의 기원을 보아도 그렇다. 평양대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는 1905년 새벽기도회를 최초로 시작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새벽 기도회를 연다는 광고를 보고 새벽 4시 30분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교인이 4,5백 명이나 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기 위한 흉계로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직후, 조선의 앞날은 마치 바람에 꺼져 가는 촛불과 같았다. 1910년 일본은 아예 이완용을 내세워 조선을 강제합병 했다. 암울한 현실 앞에 북의 크리스천들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새벽을 깨웠다. 예수님께서 드린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자신의 복과 뜻을 관철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드린 역사가 그것이다. 당시 사경회 때 새벽에 일어나 통성 기도하는 성도들 때문에 잠에서 깬 어느 외국 선교사가 그들에게 '잠자고 나서 기도해라'고 간청하였다는 에피소드는 오늘 미국에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1930년대 말에 한국교회가 직면하였던 가장 중대한 문제, 신사참배에 대한 북한교회의 곧은 신앙을 살펴볼 수 있다.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여 천주교와 감리교는 1937년에 그리고 장로교는 1938년에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에 무릎을 꿇었을 때, 평양신학교와 목회자들은 순교의 각오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많은 수난과 탄압을 감당해야 했다.

1906년 설립된 평양 산정현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1940년 폐쇄되었고, 담임목사 주기철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5개월 앞둔 1945년 3월에 순교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주기철, 주남선, 이기선, 채정민, 김의창 목사 등은 바로 북에서 배출된 믿음의 인물들이다.

한국 최초의 소래교회, 원산과 평양 지역에 타올랐던 성령의 불길, 민족의 앞날을 위해 새벽을 깨웠던 내림의 새벽기도, 그리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했던 민족 신앙으로서 기독교회는 근대교회사에서 빛나는 북한 교회의 참 열매였다. 그러나, 지금 북녘 교회의 나무 가지엔 말라붙은 열매만 대롱 달려있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축복과 저주의 반복이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뿌리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예언할 때, 그는 그 심판 이후에 있을 축복을 보았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겨울을 헤치고 피어날 살구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는 나일강에 묻히면서도 고향 이스라엘의 봄을 비장하게 불렀으리라. '살구꽃' 만개한 북녘 교회의 봄을 애절하게 부를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리워진다. 이제 우리도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의 봄을 기다리며.

덧글 - 민족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주제로 북한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여러 교회와 교단, 단체에 따라 다양한 생각과 선교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어느 특정한 입장이나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반도 북녘에서도 누룩처럼 퍼져야 한다는 바램으로 시작합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북한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정보와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기도와 제언의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최상한 집사 [email protected] 플로리다아틀란틱대학 행정학과 객원교수

글쓴이: 최상한 집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 날: 2007년 10월 1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