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회

복음을 전한 용감한 여성들: 전도부인(2)

미국 여선교회의 선교로 전해진 기독교의 복음은 당시 전통적 봉건주의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름도 없이 불행한 삶을 살던 한국 여성들에게 '인간해방'과 '자기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남감리회 여선교회의 전도부인 사역과 초기 전도부인 교육이 어떻게 여성목회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는지 알아본다.

남감리회 여선교회 선교사역

북감리교회보다 10년 늦게 한국 선교를 시작하게 된 남가리교회 여선교회는 1897년 조세핀 캠벨을 첫 여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조세핀 캠벨은 1898년 어린 소녀 몇 명으로 '배화학당'을 시작하였다. 당시 학교 운영의 근본 목적은 '한국인에게 한국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한국인 사역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는데 교육사업을 통해서 이러한 선교정책이 실천되었다.

배화학당 출신 여성들이 1903년 처음으로 배출되어, 지방학교 교사와 전도부인이 되어 선교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학교사업과 함께 설립된 '배화학당 예배당'은 여성들만을 위한 교회였는데, 이 교회 전도부인들의 활발한 전도사역으로 교인수가 증가되어 새 예배당인 '종교교회'를 신축하게 되었다. 이로서 남가리회의 교회 설립과 초기 기독교 역사의 주체는 주로 여성들이 되었다.

남감리회 여선교회의 전도부인 사역과 교육

남감리회 최초의 전도부인은 북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톤에게서 교육받은 김세라와 백루시였는데, 당시 조선사회에서 기독교는 '나라에 흉년을 들게 만든 불길한 종교'라는 오해를 받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복음전파 과정에서 많은 배척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부인들은 일 년 동안 2천5백 명을 방문, 복음을 전하며 성경과 기독교 문서들을 판매하였다.

초기 전도부인들의 이러한 '씨 뿌리는 수고'로 인해 조선사회에 기독교가 계속 전해질 수 있었다. 특별히 김세라는 1904년 기혼여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모임을 교인가정에서 가졌는데, 여기에서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 등 기독교 기초 교리와 한글을 가르쳤다. 이 모임은 나중에 '수구문(광희문)교회'로 발전하였다.

최초의 여성목회자 양성기관 설립

전도부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한 조세핀 캠벨은 1898년 서울에 '여성 사경반(Bible Class)'을 열어 전도부인 후보자들을 교육하였는데, 나중에는 개성과 원산에서도 '여성 사경반'이 조직되었다. 1905년에는 '송도 여자 성경학원'이 설립되어 후에 정규학교로 발전하였고, 1920년에는 남북 감리교회 여선교회가 협력하여 '협성여자신학교'를 설립해 여성 전문 목회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여성 사경반과 성경학원을 통해 배출된 전도부인들에 의해 기독교 복음은 지방까지 널리 확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의 교회 설립 및 성장의 주체 세력은 전도부인들과 그들에게 전도 받은 평신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98년부터 12년 간 남감리회 선교부가 파송한 초기 전도부인들은 모두 57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이름과 생애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조선사회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복음사역에 목숨을 걸고 활동하였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성장하도록 공헌한 숨은 공로자들로서 그들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김명래 전도사, 뉴욕연회 한인여선교회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