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대강절과 버킷 리스트

장찬영 목사

'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2007년, 롭 라이너가 감독하고 저스틴 잭햄이 극본을 그리고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만 보면 금방 익숙한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두 말기 환자들, 극 중 에드워드와 카터(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역)가 병원에서 만나 우여곡절 가운데 한 방을 쓰면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비롯한 그들만의 소원목록을 작성하여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던 영화입니다.

원래, 'bucket list'에서의 'bucket'은 '양동이, 밥그릇'으로 'kick the bucket' '밥그릇을 걷어찼다' 즉, '꼴깍했다'는 비속어적인 영어표현에서 유래된 말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리스트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유언장 쓰는 것 이상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먼저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혹 죽음을 생각한다 하여도 언제 죽을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절박성이 다가오지 않다 보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멍석을 깔아주고 버킷 리스트 작성을 도와주고 싶어도,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이냐 하고 싶은 항목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우리의 삶은 그렇게 원하는 만큼 행복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을 텐데 말입니다. 혹 그냥 살면 되는 거지 하든지, 평상시에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소망을 누르거나 아예 잊혀진 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어떤 이유이든지, 버킷 리스트에 작성할 것이 없다는 것이 이미 나는 다 초연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자, 여러분들 인생에서의 버킷 리스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머리를 베토벤처럼 기르고, 그 머리를 뒤로 땋은 체로 살고 싶습니다. 마라톤을 꼭 완주하고 싶고, 영화음악을 만들고, 영혼이 시린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두 달 동안 걷고 싶고, 깊은 산장에서 홀로 머물면서, 찾아오는 친구들과 밤새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고 싶습니다... 황당합니까? 사실 버킷 리스트는 그 내용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마음에 버킷 리스트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아직 남은 연말,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다리는 어디 기발하고 멋진 버킷 리스트가 없을까요? 대강절이 쓸쓸하지 않도록, 아이들처럼 산타가 채워줄 양말이라도 처마에 걸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산타가 없다고 얘기하는 어른이, 없는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보다 훨씬 안타깝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만히 제 자신에게도, 그렇게 인생이 획하고 지나가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루어진 것은 하나씩 밑줄을 그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요즘 '대강절'(advent)을 지나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교회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말 그대로 '주님의 강림을 크게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야말로 '대강' 지나가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과 그로 인한 거룩한 소원의 마음이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는 받을 '선물 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주님의 오심으로 인해 내가 누리게 된 '축복 리스트'를 작성해 보고, 그것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나눔 리스트'가 나의 버킷 리스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 우리에게 있어서의 버킷 리스트는 세상 사람들이 작성한 그것과는 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버킷 리스트가 세속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재미있고 또 그렇게 잊혀진 꿈을 찾아가는 의미를 줄 수 있지만, 그것에서 좀 더 깊고 넓게 연장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버킷 리스트'(divine bucket list)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둘은 그렇게 엄밀하게 나누어져 있거나 꼭 구별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을 구하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사는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선교대회가 끝나자마자 주초에 급히 워싱턴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선교대회를 주관했던 선교협의회 임원모임을 곧바로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선교대회가 시작될 때는 긴급함이 없었는데, 이 선교대회가 진행되면서 "아, 이 선교대회가 divine bucket list에 있는 거구나" 깨닫게 되니 더 미룰 이유가 없어 교회에 광고도 못하고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버킷 리스트에 내년 여름에 있게 될 field conference(선교지에서의 선교대회)와 내년 12월에 있을 [KUMC 청년 선교대회]를 넣었습니다.

'divine bucket list'를 작성해 보십시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좀 황당하면 어떻습니까? 평양 유경호텔에서 전도집회 하기. 중국비자 50번 받을 때 천안문에서 찬양집회 하기. 넷 미니스트리 젊은 목사 100명과 수양회 하기. 청년 1,000명 데리고 선교지에 가기. 10 가정과 공동체 생활하며 같이 살기... 점점 리스트가 채워지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글쓴이: 장찬영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2년 12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