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괄성

타인종교회로 첫 파송을 받아 가는 분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보고 산만하고 덜렁댄단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말하는 것도, 걷는 모습도 행동도 덜렁댄다. 그래서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절대로"알아채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에 거룩한 목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는커녕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면 다행이고, 더구나 얼굴에 영성의 분위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더없이 착한(?) 얼굴이다. 어떤 사람은 험한 얼굴의 김목사가 조폭(조직폭력) 출신이 아닌가 은근히 물어보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착한" 얼굴과 덜렁대는 말씨와 걸음새로 인해 풍기는 고약한 첫 인상의 불이익도 적지 않아서 걸음걸이며 말투를 고쳐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말투를 바꾼다고, 걸음걸이를 바꾼다고 속 사람이 바뀌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내 목회의 모습도 어쩔 수 없는 나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덜렁대고 허둥댄다. 갈팡질팡 천방지축으로 보낸 지난 14 년의 백인 회중과 함께 했던 목회를 뒤돌아보니, 자신이 봐도 참 많이 부족한데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삶이야 나 혼자 덜렁대는 것으로 끝나지만, 목회야 여러 사람의 영혼에 관련된 일이 아닌가? 그러니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손길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처럼 덜렁대고 얼렁뚱땅 사는 것 같은 사람의 목회가 여기까지 오게 되기까지는 오직 그분의 섭리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몇 차례 타인종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과 타인종목회를 준비하게 될 이들을 위해 목회경험담을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목사님들이 나처럼 불필요한 고생을 하는 대신 더욱 나은 목회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덜렁대는 습관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경험한 현장체험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 경험들을 조금씩 메모를 해두었던 것을 이제 조금씩 열어보려고 한다.

나는 별로 신학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해서 나누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인 내용도 아니고, 그저 덜렁덜렁 천방지축으로 목회하며 겪은 실패담이며, 그 와중에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신학교를 다니며 제대로 배우지 못해 목회 현장에서 곤혹스러웠던 내용, 특별히 백인회중을 섬기면서 겪은 경험담이어서 어떤 내용은 한인 목회와 동떨어진 내용이 될 수도 있겠지만 타인종교회를 섬기게 될 목회자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 타인종목회의 경험이 많은 선배목사님들이 읽기에는 유치한 기록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눔의 내용을 그저 부족한 사람이 목회 현장에서 얻은 경험으로 여겨주셨으면 한다. 행여 달을 보라고 했더니 달은 보지 못하고 못생긴 내 손가락만 보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지금쯤 처음으로 파송을 받아 첫 목회지를 나간 목사님들이 있을 것이다. 기도하며 꿈과 기대로 가득찬 목사님들 중에는 그 교회가 백인 혹은 타인종교회라면 기대감뿐 아니라 두려운 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나의 고백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파송이 결정되자마자 내가 가졌던 첫 번째 생각은, "교인들이 과연 나의 영어를 알아듣기나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었다. 한국에서 별로 영어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27 살의 나이에 미국에 왔다. 그리고 시카고 근처의 게렛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 첫 목회지 파송을 받은 것이 33살 때, 1993 년이다.

영어를 한국에서부터 준비하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영어를 곧잘

  
하던 목회자들도 많겠지만, 당시 내가 영어를 읽거나 말을 하면 한인 동료학생들도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내 영어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백인회중교회를 섬기는 나의 영어 실력을 오해할까 봐 이렇게 미리 말하고 싶다. "난 영어를 못해서 한인교회 부목사로도 못 가고, 미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러니 지나친 영어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경험해보니 영어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물론 잘하면 더 좋겠지만 1세 영어가 좋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고, 발음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내 영어는 500단어 영어다. 당연히 내 설교도 800 단어에서 많이 모자라는 500 단어 영어로 이루어진다. 목회의 어려움이 어찌 언어 때문에 생기는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한인목회를 하는 한국 목사님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믿을 수 없거든 지금 섬기는 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된다. 내 설교문과 설교 녹음이 http://www.roselleumc.org/sermon_audio.htm 에 있다. 물론 영어를 잘하면 더 좋겠지만 거기에 가보면 여러분은 영어 때문에 미국인회중목회를 못한다고 미리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500 단어 수준으로 목회를 그 정도 한다면 자기도 용기를 가지고 자신 있게 목회할 수 있다고 한 후배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가까운 동네의 살렘교회에서 불철주야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목회하고 있는 1.5 세 목회자 김태준 목사님은 "목사님의 영어로 목회 하는 것을 보면 목회가 정말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김 목사님의 영어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물론 한국어로 목회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나와 같이 부족한 목사는 한인 목회를 하든 타인종 목회를 하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예배를 앞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를 못해 예배 전에는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긴장한다. 영어 예배나 한국말 예배나 마찬가지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는 긴장해서 뭘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긴장의 이유가 영어로 드리는 예배라서가 아니라 그냥 예배 그 자체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한동안 두 분의 부목사님과 함께 목회를 했다. 공교롭게 두 분 모두 미국남부 출신이다. 이제는 남편을 따라 남쪽으로 다시 떠나간 부목사님은 켄터키 출신이었고, 또 교육과 선교를 담당해서 열심히 섬기고 있는 젊은 목사님은 미시시피 출신이다. 이 분들은 남부 출신답게 남부억양(Southern accent)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남한("South" Korea) 출신 담임목사인 나만큼이야 하겠는가? 당연히 내 영어 억양이 가장 억세고 거칠어서 알아듣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담임목회를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밖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타인종목회를 하는 한인목회자들이 가진 장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도 해야 한다. 우선 내 영어의 한국식 억양 때문에 교인들은 예배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대체 내 영어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은혜가 될 수 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기 위해 우선 집중해서 설교를 들어야 한다. 이게 예배 드리는 이들에게는 큰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도록 하는 설교자를 가진 교회와 교인들이 하늘의 복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는 교인들에게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실수로라도 말할 정도로 자기분수를 모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고 불필요하게 죄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의 풍성하고 분명한 한국식 영어발음(Rich & thick Korean accent)으로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또 500 단어 설교는 알아듣기 쉬운 설교이기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중,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찌 돌려 말할 여유나 생각이 없다. 하기 어려운 말을 빙빙 돌려 할 수도 없고, 대화를 할 때도 "예" 혹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는 목회자는 오히려 교인들에게 신뢰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교인들은 한국인 목사가 분명히 한국적인 영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부족함까지 영성과 은혜로 믿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이래저래 복 받은 목사다. 아니 누군가 나를 위해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물론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든지 어눌하게 하든지 언어의 장벽이 있든지, 목회자의 마음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다. 목사가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목회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이것은 나처럼 죄 많고 부족함이 차고 넘치는 목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적이라고 믿는다.

형편없는 영어 실력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춘다고 감춰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영어 하나 때문에 기죽고 겁먹을 일도 아니다. 아니 부족한 영어로 전해지는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은혜 받는 우리 교인들을 자랑하고 사랑하고 감사한다. 목사가 교인을 사랑하고 노력하는 줄 아는 교인들은 목사의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결국 서로 통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목회하고 있다.

 
두 번째 걱정은 막상 첫 주일을 준비하려는데 첫 예배와 그 주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물론 그 동안 미국교회를 출석하면서 배운 것도 있고, 참고하기 위해 모아둔 주보도 적지 않았지만 직접 준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부끄럽게도 연합감리교회(이하 UMC) 예배서(Book of Worship)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목사취임예배는 감리사가 보내준 취임예배 형식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드렸다.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때는 부족해도 참 많이 부족한 목사였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한동안 미국 교회 목회를 앞두고 찾아오는 후배 목사님들에게 예배서(Book of Worship)를 한 권씩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 권이 남아있다. 필요하신 분은 연락하시라.

예배서 한 권으로 예배 준비가 다 끝나면 목회가 얼마나 심심할까? 예배로의 부름(Call to Worship), 참회의 기도(Prayer of Confession) 등등은 한국말로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나의 짧은 영어로는 더더욱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써야 하는 목회서신, 행정에 필요한 각종 서식과 편지, 추천서, 위로 편지, 축하 편지 등등을 써야 하는 일도 처음에는 그렇게 쉽지 않은 목회현장의 많은 과제였다. 지금이야 교회 사무원이 있어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첫 파송 당시에는 목사가 교회의 유일한 스텝이었다. 주보도 편지도 뉴스레터도 다 혼자서 해야 했기에 사무행정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예배인도를 위해 그때 찾은 자료 중 지금도 유용하게 쓰는 것은 3 년 단위로 쓸 수 있는 Lavon Baylor의 3 권 Taught by Love, Led by Love, 그리고 Gathered by Love이다. (Taught by Love - A, Led by Love -B, Gathered by Love - C by Lavon Baylor, Cleveland: United Church Press)

그 밖에도 Communication Resources에서 나오는 예배자료와 편지자료 등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설교 준비보다 주보와 행정,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준비과정에 소모되는 시간이 너무 많았는데 필요한 참고도서의 도움을 받으니, 그 후로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자료를 잘 구비하는 것도 목회를 잘 준비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첫 파송지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막무가내 목회자였던 셈이다.

글쓴이: 김응선 목사, 로젤연합감리교회 IL
올린 날: 2007년 7월 17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