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회

복음을 전한 용감한 여성들: 전도부인

김명래 전도사, 뉴욕연회 한인여선교회연합회 회장

미국의 한인연합감리교회가 선교 1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를 드린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한인연합감리교회가 102년의 역사와 더불어 오늘에까지 이른 것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들은 특히 개체교회에서 여선교회 활동을 통해 이름도 빛도 없이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하면서 교회와 한인사회를 이끌어 왔으며, 오늘도 그러한 사역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고 있다.

'여-선교-회'는 이름 그대로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모인 여성들의 모임을 의미하는데, 연약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들어서 엄청난 선교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우리는 여선교회의 역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번 호부터 몇 차례에 걸쳐 한인여선교회의 신앙의 뿌리는 무엇이며, 전도부인(Bible Women)사역을 어떻게 행하여 왔고, 현재 한인여선교회가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전도부인 선교가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린 미국여선교회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180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총체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외세 열강의 간섭으로 왕권은 쇠퇴하고 주권 또한 잃어가고 있었으며, 심한 가뭄으로 인해 백성들은 굶주림에 지쳐 있었다. 부정부패와 엄격한 유교사상으로 인한 계급차별로 여성과 아동, 하류 계층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남자들은 술과 노름에 빠져 있었으며, 대다수 여성들은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및 농사 짓는 노동력으로만 여겨질 뿐 교육이나 의료혜택은 전혀 받지도 못한 채 이름도 없이 팔자와 운명을 한탄하며 살고 있었다.

한국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미국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1884년 오하이오주 리벤나 지방의 여선교회 모임에서 한 익명의 여성이 "어둠 속에 있는 한국의 여성들을 위한 복음전파와 교육 사업에 써 달라"고 지정헌금을 한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북감리회 '감리교 여성 해외 선교사 공회'는 당시 오하이오 연회 여선교회 임원이었던 메리 스크랜톤을 1885년 한국의 첫 여선교사로 파송하였다.

메리 스크랜톤은 1886년에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단 한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이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하류층 출신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이화학당에 나오면서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북감리회의 초기 여선교사들은 선교사역의 중점을 교육에 두고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으며,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를 설립하였다.

봉건체제 하의 한국여성들, 기독교에서 새로운 가능성 발견

이러한 선교사역은 전통 봉건주의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이름도 없이 불행한 운명을 안고 살아왔던 한국여성들에게 '자기개발'과 '인간해방'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불우한 여성, 비천한 계층의 여성들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복음전파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 전도부인이 되었다. (다음 호에는 전도부인들과 사역과 공적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기사입력: 2006년 1월 24일 오후 12:29